아름다운 삶의 이야기/힐링스토리

돌나라 효녀심청이...

해와달 처럼 2013. 2. 14. 22:07

어느분이 올리신 글입니다.

 

돌나라 한농마을에사는 현대판 심청이!

전신불수 아버지를 위해 청춘을 던진 효녀 이희진양

요즘같은 시대에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청춘을 포기한

  아름다운 효녀가 있어 주위에 귀감이 되고 있다

금번돌나라 한농복구회 문경상주지부 한마음 체육대회에서 효행상을 수상한 이희진양(25세)

 

 

효도를 위한 아름다운 포기

 

이희진 양의 아버지 이상선씨(59세)는 1994년도에 불의에 교통사고로 인해 몸을 전혀 쓰지못하는

 전신불수가 되었다. 신호를 위반한 차량이 이상선 씨의 자가용을 들이받던 그 때, 희진 양은 아홉살이었다. 그 이후 초등학교 졸업까지 포기하고 아버지 간호를 시작한지 어언 16년. 희진 양은 꿈많은 십대 소녀시절과 이십대 캠퍼스의 꿈까지도 통째로 아버지의 병상 곁에 묻어버렸다.

학교를 다니고 싶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희진 양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빠가 이렇게 다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시니까 엄마 혼자서는 간호하기가 힘드시잖아요.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아쉬웠지만, 아빠 옆을 지키며 간호해드리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공부는 짬이 날 때 혼자 책보면서 틈틈이 했어요.”

예전에 학골지부의 한 한농 회원이 희진 양에게 “어떻게 하면 효도를 잘 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았단다. 그에 대한 희진 양의 대답이 놀랍다.

자신의 계획을 완전히 포기해 버리면 진정한 효도를 할 수 있어요.”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아프신 아버지를 팽개치는 것이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십대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보다 더 힘들어서 청춘을 통째로 접어버렸다고.

희진 양에게 붙는 ‘현대판 심청’이라는 수식어는 그래서 과분하지 않다. 심청이의 아버지는 단지 봉사였을 뿐이지만 희진 양의 아버지는 전신불수 환자라 한시라도 곁을 떠날 수 없었다는 점으로는 오히려 그 이상일지 모른다. 생을 포기함으로 마지막 효도를 한 심청과 자신의 꿈과 계획, 사춘기 시절의 감성을 통째로 포기해 효도를 한 희진 양은 닮은 꼴이다.

新 고려장이라는 충격적인 사건 보도로 인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효자 효녀가 건재하고 있음이 희진 양을 통해 또 한 번 '인증'된 것이 아닐까?

“아빠가 시키셔야 할 것이 워낙 많다 보니까 내 모든 생활을 아빠의 생활에 맞추어야 했어요. 나만의 꿈을 위해 목표를 정해놓고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죠. 마음잡고 책을 읽어보려고 책상에 앉으면 몇 분 있다가 또 아빠께 달려가야 하니까요. 예전엔 아빠가 부르실 때마다 자주 왔다갔다해야 하는 것이 힘들고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 너무 괴로워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가도 ‘내가 없으면 아빠는 하실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내가 도와드려야지….’ 하고 마음을 다지곤 했죠. 그리고 아빠와 함께 하면서, 같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니까 보람되고, 아빠가 나 때문에 편안해하시고 웃으시면 저도 즐겁고 행복했어요.”

절세 효녀 딸, 하늘이 내린 아픈 축복

희진 양의 아버지 이상선 씨는 딸 희진 양에 대해 묻는 말에 연신 눈물을 보였다.

“항상 웃는 낯으로 아빠를 대하고, 무슨 일을 시키든 간에 기쁘게 순종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내가 한번 책을 보고 싶다고 하면 많은 동작이 필요해요. 날 일으켜 앉히고, 상을 놓고, 책 가져오고, 책받침 놓고, 책 펴주고, 입에 침을 물려주고, 스탠드 켜고…, 그런 일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시켜도 아무 불평없이 순종해요. 또 운동 시켜주는 것도 다 해 주고, 얼굴부위는 예민하니까 먼지만 묻어도 신경이 쓰이고 굉장히 가려워요. 그러면 그걸 다 닦아주고 해야 하는데 하나하나 열심히 다 해 주는 거예요.

희진이가 없었다면 내가 이렇게 살아있지 못했을 거예요. 희진이 덕분에 참 오래 살았지요. 아빠에 대한 효심이 참 남달라요. 아버지로서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해요. 나 때문에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지금까지 소녀시절과 처녀시절을 다 내 뒷바라지 하느라 보내버렸는데…. 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고, 오히려 울적한 이 아빠를 달래기도 해줘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으면서도 비관 대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희진이 덕택입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 가보니까 욕창도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16년째인데도 욕창도 없고 아무런 질병도 없는 거예요. 몸을 못 쓰는 것 외로는 아주 건강한 상태예요. 하늘이 우리 가정에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천사같은 딸을 보내주신 것 같아요. 대개 바깥에 못나가고 집안에서 살면서도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법, 남을 배려하는 법, 무슨 일이 있어도 굳은 의지로 이겨내는 법을 스스로 배우는 것 같아요.

참,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엄마가 없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내 몸을 옮기려고 하다가 발목을 삐기도 하고… 여자아이가 힘없고 약한 몸으로 아빠를 들어서 옮기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가슴 아파 죽겠어요. (흐느껴 우심) 저희 엄마도 혼자 못하는 일을 희진이가 혼자 이를 악물고 하는 거예요. 부모로써 정말 너무 못할 짓을 시키는 것 같아서…. (흐느끼심)

그래도 항상 밝게 살려고 하고, 미소를 잃지 않고 사니까 참 너무나 감사해요. 십대 소녀로 꽃다운 나이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사춘기 때 마음고생도 심했을 텐데도 아랑곳없이 바른 모습으로 자라주고, 몸이 불편한 아빠를 위해 밤낮없이 간호해 주고….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올해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희진 양의 어머니 김종선 씨(58)가 얼마 전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이다. 실로 설상가상의 일이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긴 했으나, 이후 6개월 간은 더 지켜보아야 한단다.

희진 양은 이제 어머니 몫의 아버지 간호를 얼마쯤 더 감당해야 할 뿐 아니라 어머니 수발까지 도맡아야 한다. 어머니는 그런 딸이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우리는 희진이가 너무 안쓰러워요. 내가 뇌종양으로 쓰러진 후에 사람들이 ‘희진아, 힘들어서 어떡하니?’하고 안타깝게 물으면 희진이는 밝게 웃으면서 ‘우리 엄마 아빠인데 뭐가 힘들어요.’하고 대답했다고 해요. 말도 얼마나 이쁘게 하는지… 내가 아프니까 두 배로 신경을 써야 하고… 무엇보다 부모 때문에 가족들과 어디 놀러다니지도 못하고, 재밌고 자유롭게 청춘을 보내지도 못했다는 것이 우리 가슴에도 큰 상처이지요…. 하지만 전에도, 제가 뇌종양 수술을 하고 난 지금에도 우리 가정이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하늘을 원망해 본 적도 없어요. 아마 희진이같이 예쁜 효녀를 딸로 두어서 그런가 봐요. 힘들어도 항상 명랑하게 웃고 다정한 딸 덕분에 우리 가정에는 그늘이 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번 체육대회 시상식 때 효행상을 수상하면서도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이런 상을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오히려 부끄러워했다는 이희진 양. 절세의 효녀일 뿐 아니라 심성 또한 맑고 고운 그녀는 돌나라 한농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청소년들의 표본이자 교훈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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