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러리/이런저런 이야기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과 기념관

해와달 처럼 2014. 3. 10. 10:04

 

이웃의 동생 어머님 께서 무릎관절 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을 갔어요.

늘 부지런하신 어머님께선 80세가 다되신 고령에도 평소 건강 하셨는데

얼마전 부터 무릎에 통증을 느끼셔서 진찰을 해보니

관절이 찟어 졌다네요.병문안차 들러서 나오는데 옆 건물이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이라 궁금해서 들러봤더니

전국민이 일어나 외채를 갚겠다는 애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운동 이네요.

 

 

 

국채보상 운동은

1907년 제국주의 일본의 "부추김과 꼬심"으로 진 나라 빚을

일반 국민들이 대신 갚겠다고 일어난 <외채갚기 운동> 입니다.

이 운동은 전국민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시민운동> 입니다.

 이 운동은 <한국 최초 여성운동>  이며

<한국 최초의 언론 켐페인 운동>  이고

<한국 최초의 금연.절약운동> 이며

<한국 최초의 학생운동> 입니다.

 

 

 

국채보상 공원에는 매화꽃이 활짝 웃고 있네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두 인물들

 

 

 

서문시장의 상인들이 국채보상운동 모금에 참여 하고 있네요.

남자들은 담배를 끊은 돈을

여자 들은 소중히 생각하던 비녀.가락지 등을

나라를 위해 내어 놓았답니다.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제국신문과 같은

신문에 중요한 역활 덕분에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인 운동이 될수 있었 답니다. 

 

 

 

대한제국을 경제적 으로 지배하려는 속셈을 가진  일본에 의해 지게된

1300만원 이라는 큰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기위해 시작된 나라사랑 운동 입니다.

전국 팔도의 많은 백성들이 너도 나도 할것 없이 모두 국채보상운동에 참여를 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실패 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국채보상 운동 정신은 계속 남아

이후 독립운동의 큰 발판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