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농촌에서 뜬다./돌나라 한농 이모저모

동아일보 기사 _ 나누고 갈것만 남아 얼마나 홀가분 한지 모릅니다

해와달 처럼 2014. 3. 18. 17:41

 

"나누고 갈것만 남아 얼마나 홀가분 한지 모릅니다."

 

 

 

무욕(無慾)의 철학 노래하고 유기농 전파하는 석선 박명호 선생
국내외에서 소외된 이웃돕기… 추위 녹이는 ‘아름다운 선행’ 감동

 

 

 

브라질 콩밭에 선 석선 박명호 선생(왼쪽에서 네번째).

 최근 중고교생 삼남매의 기부 선행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15년간 모은 용돈 350만 원을 선뜻 내놓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김밥 장사로 어렵게 모은 돈을 흔쾌히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쾌척한 할머니의 이야기도 간혹 들린다. 기부로 나눔을 실천하는 한 가수의 삶도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런 사례는

 알려진 것이고,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는 소리 소문 없이 조용한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에 평생을 ‘무욕(無慾)’을 실천하며 무소유의 철학으로 나눔의 미덕을 실천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사단법인 돌나라 한농복구회(돌나라한농)’를 이끌고 있는 석선(石仙) 박명호 선생(71)이다.

매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밀가루와 쌀·국수 등을 지원하고, 타국에서도 왕성한 후원활동을 전개하며, 폭력·

탈선 없는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등 방대한 일들을 소리 없이 이끌어 오는 것도 그의 신비감을 더하게 한다.

변하지 않는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으로 이 시대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손꼽히는 석선 선생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들여다봤다.
시린 세월,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

 

 

 

석선 박명호 선생.

석선은 “병든 땅과 병든 몸, 마음을 회복하고 국민 모두를 통합으로 끌어안는 치유의 지도자가 내게 주어진 길”이라며 “버리고, 나누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운을 뗐다. 석선은 돌나라 한농을 통해 환경과 사람, 인류를 살리는 지구환경 회복 운동을 꿋꿋이 펼치고 있다.

한번 품은 뜻이 돌같이 변질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품고 있는 ‘돌나라 한농’은 유기농을 통해 한국 농촌을 복구하고 지구환경을 회복하기 위해 1994년 설립됐다. 설립 이후 유기농을 실천·보급하면서 한국 농촌을 살리는 중심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제는 세계 곳곳에도 진출해 나눔을 전파할 만큼 그 영향력이 크다.

그는 1984년 속리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에 터를 잡았다. 마을의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매년 밀가루와 쌀, 국수 등을 지원했다. 우표 한 장 살 돈이 없을 만큼 극빈한 생활을 겪었지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웃과 나눴다.

사실 그는 평생 시린 삶을 살았다. 인생은 그에게 가난과 불행이란 짐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안겨주었다. 종교를 통해 나누고 베풀면서 사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독하게 마음 먹고 힘든 길을 걸었다. 그는

 “행복했더라면 무욕의 삶을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충남 보령시 성주산 자락의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석선은 다섯살에 천자문을 뗄 정도로 명석했지만 중학교를 마친 후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했다. 유종을 앓았던 선생의 어머니가 갓난아기 때 모유를 먹지 못해서인지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몸이 허약했기 때문이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앙을 접하면서 방황이 시작됐다. 아버지가 엄격한 유교문화의 구속으로 기독교

신앙을 거세게 반대하면서 18세부터 26세까지 네 차례의 가출을 경험했다. 이후 카투사에서 군 생활을 했다.

선생은 제대 후 생활을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경험하게 된다. 군고구마 장사부터 보세품 헌 스웨터 판매,

냉차장사, 구두수선, 날품팔이, 여름철 민박, 성서판매 등 안해 본 일이 없었다. 결혼한 후에도 그의 궁핍하고

 피곤한 생활은 계속됐다. 넉넉한 집에서 자란 그가 집에서 나와 생각지도 못했던 공사판 막노동으로

 날일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다.

고단한 생활이 이어지면서 그의 사상과 철학도 더 넓고 깊어졌다. 그는 가난이 없는 새 세상, 병과 싸움,

범죄가 없는 새 세상을 제창했다.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전 지구적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젊은 세대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무공해 유기농 농산물로 대통령상 수상

피폐한 땅을 살리고, 건강한 먹을거리로 병든 몸을 회복시키며 한국 농촌을, 더 나아가 지구를 살리자는

취지의 돌나라 한농을 세운 것도 그래서다.

돌나라한농은 1994년부터 ‘무농약·무비료·무제초제’의 ‘3무농법’을 하고 있다. 완전 유기농법으로 왕성한

농촌복구운동을 펼친 결과 세 차례에 걸쳐 유기농업 정착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거의 맨손으로 돌나라한농을 출범시킨 선생은 현재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 필리핀 중앙아시아 케냐 캐나다 브라질 등 전 세계 10여 개국에 돌나라 영농단체를 운영할 만큼 탄탄하게 다졌다.

국내에는 경북 울진, 청송 등 10여 곳에 100만 평이 넘는 무공해 농업단지를 조성해 안전한 국민 먹거리 보급과 농업 활성화에 기여해 왔고, 이를 해외 곳곳에 확장했다. 특히 브라질에는 4000만 평의 대규모 농장을 만들어

 해외 영농기반을 다졌다. 앞으로 100만 ha(헥타르)의 땅을 더 확보해 식량대란에 대비할 계획이다.

그의 활동은 농촌운동, 먹을거리 운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폭력과 탈선이 없는 대안학교 ‘돌나라 한농예능학교’를 설립해 청소년 문제와 교육에 관심을 두는가 하면, 부모효도를 근본으로 하는 ‘부모효도하기 운동본부’를 세워

 가정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또 타국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독립군 후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고려인 돕기 운동본부’를 설립해 왕성한 후원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71세를 맞은 석선의 좌우명은 ‘일일청한 일일선(一日淸閑一日仙)’이다. ‘하루를 맑고 깨끗하게 살면

그날의 신선이 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본래 이기심과 탐욕으로 찌든 것이 인간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기심만 없애면 5분 안에 해결되지 못할

 문제가 없어요. 이기심, 탐심을 버려야만 재(財)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통해 얻은 무욕과 달관의 철학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동아일보 기사 2014,2.27 (기업&CEO)" 나누고 갈 것만 남아 얼마나 홀가분 한지 모릅니다."